이름: 정의
포지션: 산부인과의(Obstetrician Gynecologist)
파견 국가: 차드
활동 지역: 아드레
활동 기간: 2024년 6월 - 2024년 8월(2개월)
임신중독증으로 입원해 제왕절개 후 건강히 아기를 분만한 차드 환자 퇴원 전 기념으로 찍은 사진 ©정의/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님이 국경없는의사회 각지 프로젝트에서 활동해 오신 세월이 이제 십 년이 더 넘습니다*정의 활동가의 파키스탄 활동기 읽어보기. 이번에는 어디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2011년에 콩고민주공화국 남키부쪽에 나갔던 것이 저의 첫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었고 이번에는 차드의 아드레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활동을 끝내고 돌이켜보니 마치 처음 활동을 나갔던 곳에선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만큼 이번 활동은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2023년 발발한 수단 전쟁 이후로 인접국 접경지대인 차드 아드레로 넘어오는 난민들의 수가 급증했기 때문일까요?
한국으로 치면 2차 병원급 시설이어서 근무 환경 자체가 어렵다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로서는 수단 전쟁 발발 이후 수많은 난민이 급증하면서 긴박했던 시기는 지난 것으로 판단, 제가 도착한 2024년 6월을 기해 해당 현장 긴급구호 활동은 축소해 나가기 시작했고요.
다만 제가 근무한 산부인과는 과 특성상 근무 강도가 워낙 세니까 파견 기간도 원래 짧습니다. 당직을 서야 한다는 것은 밤중에도 언제든 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아이는 예고없이 언제든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거잖아요(웃음).
콩고민주공화국 등지에서는 프로젝트 상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당직도 같이 담당해주는 현지 의사들이 있어 그렇게 자주 당직을 서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차드에서는 산부인과를 담당하는 의사가 저 혼자였어요. 즉, 2달 내내 당직이었죠. 그러다 보니 이틀에 한번 꼴로 밤에 병원에 불려가서 수술을 할 일이 생겼어요. 꼭 수술이 아니더라도, 경과가 이상한 환자가 생기면 전화가 오는데, 통신 상태가 안 좋으니까 꼭 옛날 초기 무선통신 도입 당시처럼 수화기에서도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나고 의사소통은 프랑스어로 이루어지니까 더욱 어렵게 느껴졌죠(웃음). 밤에 잠을 못 자게 되어서 힘들면 낮에 별일이 없을 때는 숙소에 와서 잠을 보충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40도가 넘어가는 현지 기온이 너무 높은데다 숙소에는 병원과 달리 큰 창문이나 천장에서 돌아가는 실링 팬도 없이 너무 더우니까 낮에 숙소에서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수단 출신 난민인 산모 및 그가 낳은 아기와 병실에서 찍은 사진 ©정의/국경없는의사회
열악한 생활 환경 속에서 바쁘게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더욱 힘드셨겠어요. 주로 어떤 환자들이 있었나요?
아드레 인근지역에는 보건소들만 있고, 아드레에서 제가 근무한 곳이 차드 보건부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다 보니, 보건소에 다니던 산모들도 수술이 필요하면 결국 그리로 왔습니다.
쌍둥이 임신인데 한 명만 나오고 나머지 한 명은 반나절이 지나도록 안 나온다든가, 아기가 팔만 나왔다거나, 분만 중 많은 피가 난다거나, 그런 것은 예약 후 진료가 가능한 상황은 아니죠.
저도 산부인과 의사 경력이 20년이 넘지만, 그런 저로서도 한국에서 본 적이 없는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산전검사를 규칙적으로 하니까 ‘어? 아기를 낳고 있는데 이제 와서 보니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네?’ 이런 경우는 없잖아요. 그런데 차드는 보건소에는 물론 심지어 병원에도 초음파 검사 기기가 없으니까 산전검사시 초음파로 진단을 안 해서, 그런 일이 왕왕 있습니다. 아드레 병원의 초음파 기기도 국경없는의사회가 제공한 그 병원에서 유일한 초음파 기기였어요.
산모가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배가 심하게 불러서 쌍둥이 임신으로 내원했다가 초음파검사 후 양수과다증으로 진단된 경우도 있고 전치태반인 경우도 있었는데요. 우리나라같으면 전치태반의 경우 수혈을 준비해서 ‘(제왕절개)수술합시다’ 하거든요. 그런데 차드도 그렇고 제가 가본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에서는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아기를 많이 낳습니다. 집에서 낳으면 물론 순산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문제가 있을 경우 2-3일 시일이 흐른 후에야 병원에 오게 되어 이미 아기도 죽어있고 산모의 자궁도 터져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보건증진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고요. ‘병원은 아니더라도 보건소에라도 가서 아기를 낳으라’고 아웃리치나 교육 활동을 하니까요.
활동가들을 위한 숙소의 화장실. 아침저녁으로 관리되어 깨끗한 편이었다. ©정의/국경없는의사회
한국과는 임신·출산 관련 환경이 아무래도 많이 다르겠죠. 기억에 특히 남는 환자가 있었나요?
한국에선 일단 한 사람의 제왕절개 수술 회차가 4번 이상 가는 경우도 드뭅니다. 제가 국경없는의사회 세계 각지 프로젝트에서 일을 하다보니 제왕절개 5회차인 경우까지는 봤는데, 이번 활동 기간에는 6번째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환자도 있었습니다. 제왕절개 수술이란 것은 사실 많이 하면 할수록 뱃속이 말하자면 ‘엉망’이 되기 쉬운데 말입니다. 장이 눌어붙어 있거나 방광이 찢어지기도 하고, 다른 과의 진료나 개입이 필요하게 되기 쉽죠.
또, 자궁파열로 들어온 환자가 있었어요. 이미 집과 보건소에서 진통을 하루 넘게 하고 자궁문도 다 열렸는데 아기가 안 나오니까 내원한 경우인데, 아기 심장박동이 확인이 안 되는 거예요. 초음파를 보니 아기는 이미 죽어있고 뱃속에 피가 많이 고여서 자궁파열이 의심되었습니다. 자궁파열은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산모마저 사망하는 초응급상황입니다. 사산된 아기는 수술실에 들어가서 꺼내고 파열한 자궁은 꿰맸습니다. 보통 자궁이 파열되면 1-1.5리터 정도 출혈이 발생합니다. 수술 후 나왔을 때 환자는 일단 괜찮아 보였는데 나중에 숙소로 돌아오니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와요. 해당 환자가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고 맥박은 오르며 배가 불러오니 다시 와서 봐 달라는 겁니다. 병원에 가보니 출혈이 또 있어요. 6시간 만에 다시 배를 열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재수술이란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재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무언가 놓친 것, 찾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는 의미거든요. 그래서 출혈로 재수술을 하게 되면 산모가 사망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봐요. 그런데 이 환자의 경우는 재수술을 안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혈압이 너무 떨어져 마취과, 수술실 간호사들과 의논 후 보호자를 불러 동의서도 다시 쓰고, ‘이 사람은 아예 자궁을 들어내야 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열어보니 혈관에서 출혈되는 곳이 바로 보여요. 그 부분만 지혈하고 다른 곳은 멀쩡한 것을 확인 후 다시 닫았습니다. 수술 시간도 짧고, 환자는 멀쩡해져서 퇴원하고요. 20년 넘는 제 의사 경력 기간 중에서 그때 재수술이란 것을 처음 해봤습니다.
긴박한 상황이 꽤 있었군요. 또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아프리카의 국가들에서는 보통 환자가 수혈을 받는 경우 보호자에게 헌혈을 하라고 권합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미신 때문인지 수혈을 꺼리는 경우가 있는데 차드 아드레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보호자뿐 아니라 주변인들까지 쉽게 헌혈을 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환자의 경우 총 3팩, 즉 1,200-1,300cc 정도의 수혈을 받았는데, 그렇게 받고도 헤모글로빈 수치가 6정도(*보통 12-13)였습니다. 우리나라같으면 수혈 더 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거기는 그 정도면 환자만 잘 견디면 괜찮다고 퇴원시킵니다. 워낙 빈혈 상태인 사람이 많으니까요.
산모가 임신중독증, 즉 자간증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혈압이 올라가고 경련을 하기도 하는데, 그중 말라리아 환자도 많아 심한 경우 뇌성 혼수로 의식을 잃습니다. 자간증 때문인지 말라리아 때문인지 주 원인 파악도 어렵죠. 이런 환자들을 보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일을 하다 보면 산모들을 상대로 더 여유가 생깁니다. 그 어떤 증세를 어떻게 호소해오더라도 제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거예요. ‘이 환자는 나와 한국어도 잘 통하고 실제 사망할 위험도 별로 없고, 과거에 수술을 여러 번 경험한 전적도 없다. 이 얼마나 진료하기 편한 환자인가’ 이런 생각이 드니까요. 아 물론, 다른 의미로 진료하기 어려운 점은 한국에도 있습니다(웃음).
차드 아드레 소재 병원 국경없는의사회가 관리하는 산부인과 수술실에서 간호사들과 함께 ©정의/국경없는의사회
국경없는의사회 경험이 그런 식으로도 활동가님 경력에 녹아드네요. 십 년 넘게 계속 활동하시는 동력이 그런 걸까요?
솔직히 말해 저도 젊었을 때는 ‘좋은 일을 하겠다’는 일종의 허영심으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첫 활동을 나간 현장이 이번 차드 현장처럼 아주 어려운 곳이었다면, 울면서 돌아와서는 ‘다신 안 나가겠다’고 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점점 어려운 현장에 나가서 활동하다 보니 저 스스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니, 내가 그동안 굉장히 훌륭한 의사가 됐구나? 이제 웬만한 수술은 다 할 수가 있구나. 유착이 심한 6번째 제왕절개수술도 간호사와 단 둘이 하고.’ 마치 제가 점점 더 훌륭한 의사가 되도록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것 같았죠.
내가 점차 내 몫의 일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지고, 세상에 정말 필요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산부인과 관련 프로젝트에서 일하면 아기들을 포함해 정말 많은 생명을 살린다는 실감이 납니다.
저는 사실 한국에서 부족함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죠. 그렇게 계속 살다가도 이 세상에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지각하고, 조금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누자는 생각을 하는 게 인간된 도리라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벌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여러 한국의 활동가뿐 아니라 후원자분들도 ‘내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니, 이제 주변을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 후원 대상이 꼭 국경없는의사회일 필요도 없으니, 다른 곳에 후원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내가 후원하는 기관이 정말 그 돈을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는가’ 의심이 드실 수도 있죠. 국경없는의사회 후원 관련해서는 그런 걱정 하실 필요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국경없는의사회는 수술에 필요한 약이건 실이건 반창고건, 재원을 ‘적절하게’ 쓰기 위한 프로토콜이 마련돼 있는 곳입니다. 꼭 최고급을 고집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현장에서 최선의 치료를 통해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곳이죠. 이 세상에 얼마나 국제적 구호 활동을 하는 기관이 많습니까? 그런데 환자를 직접 보고 만지며 치료하는 곳은 바로 국경없는의사회거든요. 이미 많은 분들이 그걸 아시기에 이곳을 후원하시고 또 이곳을 통해 활동하려고도 하시는 거죠.
활동가님의 향후 계획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한국에서 단기로 일을 하고, 휴가도 다녀올 계획입니다. 이전에는 매 2-3년을 주기로 6개월 이상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활동을 나가기도 했는데, 이번에 2달만 다녀와도 힘든 걸로 봐서는 앞으로는 1년에 한 번 정도 단기 활동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당장 다가오는 올해 11월에 이미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방기에 석 달 기간 파견이 예정돼 있지만요(웃음).
국경없는의사회가 관리하는 산부인과 분만실의 간호사 및 조산사 동료들과 함께 ©정의/국경없는의사회